B.C. 220중국 최초 ‘진(秦)’의 전국 통일한국사
전국시대 말 진(秦)이 나머지 6국을 정복해 중국을 통일(기원전 221년).
B.C. 220.05진 시황제(秦始皇帝), 중국 최초의 황제로 선포한국사
진 왕 정(政)이 통일 이후 스스로 ‘황제’(중국 최초의 황제)로 칭함(기원전 221년).
B.C. 208진승·오광의 난(대택향 기의), 중국 최초의 민중 반란중국사
진 말기에 진승(陳勝)·오광(吳廣)이 대택향에서 봉기(기원전 209년).
B.C. 205–B.C. 201초한쟁패(楚漢相爭): 항우 vs 유방 패권 경쟁일본사
진 멸망(기원전 206년) 이후, 서초패왕 항우와 한 고조 유방의 패권 경쟁(기원전 206–202년).
B.C. 201한나라 건국중국사
• 진(秦) 멸망 뒤 초한쟁패를 끝내고 한(漢) 왕조를 열어 중국 통일 질서를 재정비
• 유방(劉邦)이 황제(한 고조)로 즉위하며 서한/전한 체제 출범
• 수도를 장안(長安) 중심으로 두고 군현·제후국 병행 통치 기반 마련
• 이후 400여 년 한 제국 질서의 출발점
B.C. 194노관 흉노 망명중국사
• 개국공신 숙청(토사구팽) 분위기 속 ‘죽마고우’ 노관(盧綰)까지 의심받아 이탈한 사건
• 연왕(燕王) 노관이 반란 연루 의심을 받자 흉노로 달아나 귀순
• 흉노가 노관에게 왕호를 주어 한-흉노 긴장에 상징적 파장
• 공신 세력 약화와 황권 강화 흐름을 보여줌
B.C. 153오초칠국의 난중국사
• 제후왕(諸侯王) 세력의 집단 반발을 진압하며 중앙집권을 크게 강화한 분수령
• 오(吳)·초(楚) 등 7국이 한 경제(景帝) 시기 조정의 권한 축소 정책에 반발
• 난 평정 후 제후국의 군사·재정·인사 권한이 대폭 제한됨
• 군현 중심의 지방 통치가 한층 강화되는 계기
B.C. 139–B.C. 134건원 연호 (최초의 '연호')중국사
• 중국 최초의 ‘연호(年號)’ 제도를 시작해 황제 통치의 상징 체계를 바꾼 사건
• 한 무제(武帝)가 건원(建元)을 연호로 사용(기원전 140–135년)
• 이후 황제 즉위·정책 전환 때 연호를 바꾸는 관행이 정착
• 국가 기록·정치 선전의 기준 연대 체계로 자리잡음
B.C. 138–B.C. 137장건 대월지 파견중국사
• 서역(西域) 개척의 시발점으로 ‘비단길’ 외교·정보망을 연 대표 사건
• 한 무제(武帝)가 흉노 견제를 위해 장건(張騫)을 대월지(大月氏)로 파견(출발 연도는 139 또는 138 BCE로 전해져 확실하지 않음)
• 장기간 포로·탈출 끝에 서역 각국의 실정과 교역 가능성을 보고
• 이후 한의 서역 진출·교역 확대 정책에 결정적 영향
B.C. 135–B.C. 123태학·유교화중국사
• 유교(儒敎)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끌어올려 관료 선발·교육 질서를 재편한 흐름
• 한 무제 시기 오경박사(五經博士) 설치(136 BCE 무렵)로 경학 관직을 제도화
• 동중서(董仲舒) 등의 건의가 채택되어 유교적 정통성 강화가 추진됨
• 태학(太學) 설립(124 BCE)로 관학 교육과 관료 충원 기반이 확대
B.C. 120–B.C. 118곽거병 흉노 정벌중국사
• 흉노(匈奴)를 북방에서 압박해 한 무제 대외 팽창을 상징하는 군사적 성과
• 곽거병(霍去病)이 기원전 121년 무렵(121–119 BCE) 서북 변경에서 대규모 원정 수행
• 하서주랑(河西走廊) 일대에서 흉노 세력을 몰아내고 전략 거점을 확보
• 북방 방어선·서역 교통로 장악에 기여
B.C. 107고조선 멸망중국사
• 한 무제의 동방 진출로 한반도 북부에 한(漢) 행정 지배가 들어온 전환점
• 한나라가 위만조선(衛滿朝鮮)을 정벌해 기원전 108년에 멸망시킴
• 정복지에 낙랑(樂浪)·현도(玄菟)·진번(真番)·임둔(臨屯) 등 한사군 설치
• 동북아 교역·문화 접촉과 지역 정세를 크게 재편